법률뉴스

‘경제살리기’ 명목으로 죄를 짓고 수감 중인 재벌총수들의 가석방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 본인이 입으로 재벌총수 등 기업인에 대한 사면권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공약했으나 가석방은 사면과는 다르다는 논리로 추진하는 것이다.

당연히 사면과 가석방은 요건과 효력 등이 판이하다. '사면'은 법원이 선고한 형의 효력 자체를 무효화하는 행위로서 법무부 장관의 상신으로 국무회의를 거쳐 대통령이 결정한다.

반면 가석방은 형법이 정한 요건에 따라 법무부장관의 명령으로 수감자를 자신의 형기 이전에 석방하는 절차다.

따라서 사면은 잔여형기까지 완전 면제가 되지만 가석방은 석방요건이 상실되면 다시 수감하여 잔여 형기를 채우게 하는 점이 다르다.

때문에 사면은 대통령이 정치적 부담을 지게 된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역대 대통령들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자신들이 가진 사면권을 남발, 국민들의 지탄을 받았다. 그리고 이처럼 역대 대통령들의 사면권 남발에 대한 비판 여론이 강해지자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대기업 지배주주, 경영자의 중대 범죄에 대한 사면권 행사를 엄격하게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이 공약 때문인지 실제로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사면되거나 가석방된 기업인은 지금까지 없다. 특히 법무부는 지난해 7월 가석방 심사위원회까지 통과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가석방을 허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분위기는 다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등이 군불을 때자 박지원 의원 등 야권에서도 화답하고 있다.

더구나 심각한 것은 정치권의 이 같은 움직임에 언론도 맞장구 수준이라는 점이다. 특히 가석방에 대한 논조가 그렇다. 즉 형법에 형기의 1/3을 복역하면 가석방할 수 있다는 조건이 있음을 언론사마다 쓰면서 재벌총수들의 가석방을 부추기는 듯한 모습도 보인다.

즉 4년 징역형에 2년 가까이 복역한 SK최태원 회장과, 징역 3년6개월을 선고받고 21개월째 복역 중인 최재원 SK그룹 부회장, 또 징역 4년형을 확정 받고 2년 넘게 수감 중인 구본상 전 LIG넥스원 부회장 등에 대하여 가석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예측기사들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이런 기사들을 읽어보면 정부가 가석방을 해줘도 무리가 없다는 뉘앙스가 강하다.

그렇다면 실제 모든 수형자가 다 형법에 있는대로 형기의 1/3을 복역하면 가석방 대상으로 심사에 오를 수 있을까? 거의 절대로 오를 수 없다.

왜? 대통령의 사면권이 자주 사용되므로 이 형법조항은 점차 사문화가 되어갔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런 조건에 상응하는 수형자들은 거의 사면으로 석방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일반 수형자가 가석방의 꿈이라도 꾸려면 최소한 형기의 80% 이상은 복역해야 한다.

그 이유는 이렇다. 일단 구속된 피의자부터 형이 확정된 기결수까지 수감된 모든 수감자는 출소할 때까지 ‘형의 집행과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및 그 시행령, 그리고 관련 지침에 따라 등급으로 분류 관리된다. 즉 모든 수감자는 입감 이후 복역 중 수형생활과 태도, 교육 및 작업성과 등의 평가를 받아 등급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수감자는 자신에게 부여된 등급에 따라 외부인 접견(면회)부터 차별된 적용을 받는다.

평가항목은 다양하다. 수감자의 수감기간 중 생활 태도만이 아니라 성장과정, 학력, 직업경력, 생활환경, 개인적 특성, 정신상태, 보호관계, 범죄경력(전과) 및 범죄내용(죄질), 동종범죄 재범 또는 누범 여부, 범죄의 계획성 유무, 자력개선 의지(갱생의지), 석방 후의 생활계획까지 점수로 환산된다. 그리고 이 점수는 수감자의 등급 부여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평가는 누구라도 예외가 없다. 즉 미결수(법적 판결이 나지 않은 상태로 구금되어 있는 피의자 또는 형사 피고인)부터 형이 확정된 기결수까지 모든 수감자는 신입분류 심사 시 16개 항목으로 구성된 다양한 측정 지표에 의해 S1에서 S4까지 처우등급이 부여된다. 그리고 이렇게 부여된 등급에 따라 철저하게 관리된다.

특히 기결수는 거소배치, 면회(외부인 접견), 전화통화, 사회견학, 귀휴(일시휴가) 등에 대하여 차등을 두고 관리한다. 이는 전국의 구치소나 교도소 등 교정시설은 경비등급에 따라 개방시설(S1), 완화경비시설(S2), 일반경비시설(S3), 중(重)경비시설(S4)로 구분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형자의 등급에 따라 그 등급에 맞는 수용시설에 수감되며(거소가 배치되며), 시설등급에 따라 수형자의 처우도 달라진다는 말이다.

간단히 설명하면 개방시설로서 수형자가 시설 내에서 혼자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S1급 수형시설에서는 수형자의 자율적 활동이 가능하도록 통상적인 관리 감시의 전부 또는 일부를 하지 않는 반면, 폐쇄된 공간에서 생활하며 자유이동 불허 조치를 받는 S4급에서는 수형자에 대한 엄격한 관리 및 감시가 이뤄지므로 이런 평가는 매우 중요한 절차다.

특히 S1급은 월 기준 일정한 횟수 내에서 외부로 전화통화를 하거나 사회견학과 귀휴 등을 통해 바깥세상과의 소통이 가능하다. 하지만 S4급은 월 4회의 가족 등 외부인 접견(1회 접견 시간은 통상 12분)만 가능하고 전화통화, 사회견학, 귀휴 등은 모두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모든 수형자는 자신의 형기 동안 4번의 정기 재심사를 통해 처우등급을 재평가 받는다. 그리고 이런 평가는 입소 후에 처음 시작되어 형기의 1/3, 1/2, 2/3, 5/6 시점마다 정기 재심사가 이뤄진다. 이 외 상벌 또는 기타 이유 등에 따른 부정기 재심사도 있다.

재심사에서는 수형생활과 태도, 교육 및 작업성과, 잔여형기 등이 고려된다. 또 분류심사 결과에 따라 처우급등이 변경되면 변경된 등급에 맞는 시설로 이송된다. 대표적인 S1급 시설로는 천안개방교도소가 꼽히며, S4급으로는 경북북부제2교도소(옛 청송교도소) 등이 있다.

수백억 원대 회사 돈을 횡령한 죄로 징역 4년이 확정되어 복역 중인 최태원(54) SK그룹 회장은 현재 2등급 교도소인 의정부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그가 미결수일 당시 서울구치소 분류처우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2등급 처우 대상으로 분류된 뒤 형의 확정판결을 받고 지난 5월 서울구치소에서 의정부교도소로 이감되었다. 그러므로 현재 적용되는 모범수 가석방 대상자가 되려면 S1급 수형자가 되어 80%이상의 형기를 복역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엄연한 사실들을 감추고 형법에 그런 게 있으니 가석방을 해줘도 법적인 하자가 없다는 논리를 적용한다면 이 논리는 현재 수감 중인 모든 수형자에게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 특히 현재 적용되고 있는 등급제의 적용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죄를 짓고 감옥살이를 하는 죄인에게도 슈퍼갑의 위세가 통한다는 좋지 않은 여론이 정권을 뒤흔들 것이다.

재벌총수의 가석방을 건의했다는 최경환 부총리의 "왜 기업인이라고 역차별을 하느냐. 기업인이라 하더라도 가석방 요건이 충족되면 다른 일반인과 같이 기준에 맞게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 아니냐…."는 언급은 그래서 어불성설이다.

만약 최 부총리가 정말 재벌총수의 가석방을 원한다면 이 말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 현재 법무부가 대체적으로 적용 중인 일반인 가석방 요건이 형기의 4/5이므로 형기의 1/3을 복역한 기업인을 가석방하는 것은 말 그대로 특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연차의 가석방도 불허되었다. 따라서 최경환 장관이 일반인과 기준을 맞게 하라고 주장했다면 법무부는 그렇게 하면 된다.

다행이 SBS는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누구든지 요건에 맞으면 가석방할 수 있고, 요건에 안 맞으면 가석방 안 하는 겁니다.”라는 육성을 뉴스로 내보냈다. 그러므로 황장관은 지난 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가석방 불허 당시 했던 방침, 현재 일반 수형자들에게 적용하는 방침을 그대로 적용하기 바란다. 누구든지 차별이나 특혜를 받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